세계화 시대의 한국 민족주의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탈냉전 흐름과 1997년에 일어난 한국의 금융위기는 모두 한국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로 초래된 냉전체제의 해체는 동아시아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우선 소련의 몰락으로 동북아시아 패권구조에 변화가 초래되었고, 북한 '핵 위기'의 발생, 중국의 패권국가로의 성장, 미 · 일의 유착 강화 등 지역적 불안정성이 고조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냉정체제 해체에 따라 정부의 북방외교가 강화되었고, 중국, 러시아 등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가 수립되면서 대외적으로 문호가 크게 개방되었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권 몰락이 국내 사상계와 운동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급진적인 운동형태가 퇴조하는 한편, 민주화 운동이 제도화되고 저변을 확대하면서 시민운동이 성장하였다.
1997년 금융위기 역시 한국의 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경제 각 부문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졌으며, 전면적인 대외 경제개방이 이루어졌다. 구조조정과 경제개방으로 한국사회는 금융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나,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세 속에서 국부의 급속한 유출, 개인과 기업의 명목 · 실질 소득의 급격한 감소, 대량 실업 등의 사태가 초래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인은 세계화를 체감할 수 있게 되었고, 사회 양극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격렬한 내외 변화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한국사회에서는 1990년대부터 민족주의에 대한 재성찰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에 활발해진 탈민족주의 논의는 그러한 현상의 한 반영이었다. 원래 서구의 탈민족주의, 탈식민주의 논의는 주류문화의 이데올로기 작용에 대한 소수자나 소수인종 · 소수민족의 비판으로부터 비롯했고,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문화에 대항해서 다문화주의를 주장하였다. 한국에 도입된 탈 민족주의 논의는 한국 민족주의가 가진 시야의 편협성이나 배타적 민족정서, 자문화 중심주의를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하였지만 그 일각에서 서구사회의 논의구도나 문제의식에 걸맞지 않게 이승만, 박정희 등 과거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그들을 합리화하고 찬양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편의적 이해방식은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서구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는 협의를 벗기 어렵게 만들지만 탈민족주의 담론의 성행 자체는 이 시기 한국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였다.
1977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의 대외개방이 가속화하면서 한국사회의 물적재생산 조건이 한층 더 세계화했고, 한국사회의 구성은 물론 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이 크게 바뀌었다. 외국자본, 특히 초국적 금융자본이 금융시장에 진출하여 시장을 주도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노동의 측면에서도 사무실이나 공장, 들녘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였고, 개인주의의 만연과 개인의 원자화 등의 현상도 나타났다. 이제 한국사회는 코시안이나 외국인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에 따라서 그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마련해야 할 과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변화들은 어느 것이나 과거 한국의 민족주의를 재성찰하고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세계화에 대한 대응의 문제가 있다. 세계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한 조건을 이루었지만, 탈내전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는 기실 사회주의권 붕괴 후의 세계를 자본의 이해관계로 통일하려는 움직임이자, 시장원리의 관철을 주장하며 초국적 금융자본이 활동하기 쉬운 장소를 전 세계로 확대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다르지 않고, 정치적 · 군사적으로는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미국 주도의 일방적 전쟁에서 보듯이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확대와 연결되어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비정규직 노동자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극대화시켜 이윤을 확대하려는 자본의 노동착취 전략의 일환이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이다. 또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한국사회가 겪은 진통에서 나타나듯이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일으키는 영향은 이제 한국사회에 여과 없이 그대로 반영된다.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패권구도의 변화가 초래한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일본은 현재 사방에서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 일본은 한국과 독도, 러시아와 북방도서, 중국과 센가쿠 열도를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탈냉전 이후 냉전체제하에서 잠복했던 문제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인데 그런 만큼 동북아시아에서 냉전구조의 극복, 강대국 패권구도의 조정과 관련이 있고, 그것은 이 지역의 역사인식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최근 한국 · 중국 · 일본 사이에 일어난 역사논쟁은 과거의 논쟁과 다른 특징이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가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 일으킨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일본사회 내부의 전후 청산문제나 과거사 인식문제와 관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논란은 일본사회의 우경화나 군사대국화 움직임과 연결되어 있고, 또 '동북공정'문제에서 나타나듯이 중국의 패권국가로의 성장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예사롭게 볼 수 없다.
분단은 한국 민족주의의 발전에도 근본적인 제약을 가져왔고, 그 의미와 내용을 크게 왜곡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하지만 분단의 질곡하에서도 끊이지 않고 계속된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한 노력 덕분에 남북관계도 크게 발전하였고, 이제 평화통일을 위한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이 일상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분단 후에 이루어진 남과 북의 독자적인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발전이 체제적 차이로 고착된 만큼 통일을 위해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공존, 공영의 길을 마련하는 문제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또 동북아시아에서 정치 · 군사적 패권구조의 극복과 평화구조 정착이라는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주변국의 이해와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출처 - 한국사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