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종 · 선종의 통합과 지눌 불교

우기부기87 2023. 3. 3. 11:08

고려시대의 지눌은 당시 불교계의 기본적인 과제였던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교선일치의 철학을 수립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통합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였다. 지눌의 교선일치의 철학은 실로 동아시아 불교권이 도달한 마지막 단계의 것이었으며, 중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의 불교계에서도 계발되지 못한 독창적인 것이었다.

고려 후기에 선을 부흥시키면서 불교계를 개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눌의 정혜결사 운동이었다. 정과 혜는 불교 수행의 핵심을 이루는 두 요소로서, 그 어느 하나도 결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혜결사는 바로 이러한 정혜를 산림에 은둔하여 쌍수하자는 실천운동이었다. 그런데 정혜쌍수는 종교적 실천에 관한 것이므로 그것이 사상사적으로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그러한 실천수행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나 사상적 이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눌에게 이 정혜쌍수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 바로 돈오점수설이었다. 지눌에 따르면 돈오는 인간의 본심은 깨달아 보면 제불과 조금도 다름이 없기 때문에 돈오라고 하며, 비록 돈오하여도 다겁에 익혀 온 습기는 갑자기 제거되는 것이 아니므로 점수라고 하는 종교적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눌은 이러한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정혜쌍수의 법을 성적등지문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 돈오설은 당나라 시대의 하택종의 신회의 설을 받아들인 것이다. 신회에 따르면 선문에서 말하는 인간의 청정한 마음 또는 본래면목은 원래부터 고요하고 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부터 공적한 그러한 마음은 무정과는 달라 그 속에 신령스러운 인지작용이 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회는 이러한 영지의 작용을 '지'자로 표현하여 그 한 자에 실로 미묘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였다. 돈오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적하면서도 영지한 마음을 깨닫는 것인데, 그것을 돈오라고 한 것은 이렇게 깨달아지는 참다운 마음은 그것이 곧 법신으로서 제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적 수행에서는 단순히 깨달음만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그에는 다시 점수라는 종교적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돈오했다고 해도 다겁에 익혀 온 망습은 갑자기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오에 입각한 점수의 이론이 실천으로 전개될 때에는 정과 혜의 등지, 곧 쌍수가 되는 것이다. 수행의 바탕이 되고 있는 공적 영지의 자심에서 공적은 체로서 정에, 그리고 영지는 용으로서 혜에 해당하는데, 체와 용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정은 곧 혜요, 혜는 곧 정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눌의 정혜쌍수는 바로 이러한 돈오점수설을 그 이론적 배경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지눌의 선은 이러한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정혜쌍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밖에 다시 화엄사상을 도입하여 원돈신해문을 세워서 화엄과 선이 근본에서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지눌은 이 원돈신해문에서 자기마음의 무명 분별이 곧 제불의 부동명지임을 신해하여 수행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자기 마음속의 제불보광명지로 일체중생을 비춰 보면 중생의 언어 동작 치생산업이 그대로 제불보광명지의 활동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엄관은 전통적인 화엄학에서 도입한 것이 아니라 중국 화엄종에서는 방계로 간주되는 이통현의 화엄론에 의거한 것이다. 법장이나 징관의 화엄을 가장 높이 평가하여 그것을 그대로 조술하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지눌은 징관의 화엄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 대신 이통현의 화엄을 그의 선체계 속에 원용하여 크게 선양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눌의 선은 이상과 같은 성적 등지문과 원돈신해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두 문은 아직도 어로, 의로, 문해의 자취를 벗어난 것이 못되므로 이러한 지해의 장애마저도 완전히 떨쳐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눌은 이러한 지해의 장애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끝으로 선문의 활구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지눌의 선에서의 간화경절문은 바로 이러한 간화의 출신 활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송나라 시대 임제종의 대혜종고의 간화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경절문은 또 무심합도문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경계는 일체의 지해 분별을 떠나 정, 혜에도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서 지눌의 선이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라고 할 만한 것이다.

성적 등지, 원돈신해, 간화경절의 3문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지눌의 선의 실천체계는 대단히 독창적인 것으로서 주목된다. 원래 선문에서는 지해라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지눌은 그것을 대담하게 원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혜능의 적자가 아닌 하택신회와 그를 계승한 종밀의 것을 도입한 일이 더욱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다시 화엄에서도 법장, 징관 계통이 아닌 이통현의 것을 채택한 점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초 위에서 송나라 시대 임제종의 대혜종고의 간화선을 받아들여 전통적인 선사상을 펼치고 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간화적인 선법을 크게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눌의 선은 중국 임제종의 간화선을 최고의 경지로서 받아들였지만 그 간화선의 철학적 기초를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중국 임제종의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눌의 선에 와서 비로소 교, 선의 절충적 단계를 뛰어넘어 교선일치의 완성된 철학체계를 마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실천적인 불교로 전개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한국사특강